하피<<<시영 기타 덕질



여길 봐요.

어두운 밤, 램스키퍼의 육중한 동체 소음만이 들리는 스산한 암흑 속에서 하피는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에 눈을 떴다.

이건 제 위예요. 여기에 대장, 소장. 위로 올라가면 간, 폐. 이쪽에 신장.

옥색 눈에 담기는 것은 으스러진 그녀의 전 주인. 하피가 그렇네요, 하며 미소지었다. 하얀 손이 핏물진 허공을 쓸어내렸다. 짓눌린 살덩이들을 보던 하피는 상처투성이의 심장을 손에 쥐었다.

그래요. 심장이죠.

덤덤하고 담백한 주인의 말에 그녀가 박동하지 않는, 형편없는 근육을 매만졌다. 제가 감시관님을 많이 보고싶었나 봐요. 하피는 주인의 허상을 향해 웃어보였다.

틀려요. 제가 당신을 찾아온거지, 당신은 절 부르지 않았어요.

기분나쁠정도로, 당신은 멀쩡하네요. 주인의 악의섞인 말에 하피가 퍽 미안한 얼굴로 심장에서 손을 떼어냈다. 거짓말은 죄송해요, 삶이 꽤 즐거워서요. 귀여운 후배를 잠시 떠올린 그녀는 곧 투덜이 아가씨, 함장이된 조련사, 통제잘되는 강아지, 순진한 차원종을 차례로 상기했다.

그렇다고 잊진 않았어요. 다시 감시관님의 그림자로 돌아갈 거란걸요.

절대 잊을리가 없잖아요? 하피는 땅바닥에 뒹구는 갈색 눈동자에 스스럼없이 입을 가져다 대었다.

——
홍시는 죽어도 하피를 놓고싶어하지 않았으면

미로예섬 덕질 4 블랙★베히모스

5

약간은 뻗친 구석이 있는 녹빛 눈에 들어오는 머리빛깔. 술에 취하기는 커녕 술잔도 뵈지 않는 자리였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예섬에게로 쏠려있는 상황에서, 연락을 받고 달려온 미로쿠는 그 시선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재떨이 한 가득 쌓이다 못해 넘친 담배 꽁초들과 널린 빈 담배 갑. 담배를 피던 이였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에 폣병이 걸려도 문제없을 양을 잇달아 피는것이 인간같아 뵈지 않았다.

도톰한 입술에서 연기가 새어나오길 몇번, 어느새 다 타버린 담배의 불을 끄고 익숙한 손으로 새 담배를 뽑아 문 예섬이 그를 돌아봤다.

"—아."

그의 놀람과는 다르게 살풋 웃으며 손짓한 예섬이 라이터에 불을 당겼다.

"미친년."

그런 예섬의 행동을 막고 담배를 빼앗기까지의 짧은 시간. 그 역시 질린단 얼굴로, 쌓인 담배꽁초에 막 찌그러트린 담배를 던져놓았다. 킥킥, 웃는 얼굴은 평소와 같았지만 물씬 나는 담뱃내에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언제부터 담배핀거냐?"
"오래 됐어. 평소에도 이렇게 피는건 아니고, 그냥 가끔씩 당길때 있잖아."
"안펴서 몰라. 여자가 뭔 담배야."

와, 성차별 발언. 나긋한 목소리였다. 술에 취한것도 같고. 미로쿠는 생각하며 점원에게 테이블을 치워달라 요청했다. 잠시의 침묵동안 빠르게 테이블이 비워졌고, 예섬은 엎어지듯 테이블 위에 몸을 기댔다. 어쩐지 쓸쓸한 얼굴이었다.

미로쿠가 하얀 얼굴을 바라봤다. 오똑한 콧대에 이어 반듯한 눈매가 눈에 들었다.

—마리스 오빠랑 결혼할꺼야!

어린시절 제 형을 향해 혀를 빼물고 웃던 아이가 그 위로 덮어씌워진다. 그와는 다르게 어른스럽고, 또 잘생기던 사람. 그에 비해 카오스교인 답게 자주 오락가락하던 미로쿠는 썩 인기가 많은 편이 아니었다. 애초에 또래가 적기도 했지만 그건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하는 심정이었다.

"야. 너 형 생각 하냐?"
"—아니. 마리스 오빠를 내가 왜?"

아니, 첫사랑이 죽었다고 하니까 우울해진건가, 싶어서.
푸흡. 그건 첫사랑도 아니었어. 어린애 장난이지.

웃는 얼굴에서 잠시 빛이 사라졌다. 그게 아니라면 왜, 너는 이러고 있을까. 미로쿠가 천천히 손을 뻗어 예섬의 귓바퀴를 매만졌다.

보랏빛 눈동자가 살짝 흐려졌다.

"너 손길 되게 야해."
"그래서 뭐."

아니. 그냥 그렇다고.



아침이었다. 미로쿠가 눈꺼풀 틈으로 새어드는 햇빛에 인상을 찌푸렸다. 얇은 팔이 목가에 둘러졌다. 쓴 술냄새와 독한 담뱃내에 그는 꼭 정신을 잃을것만 같았다. 얼굴을 쓰다듬는 차가운 손에 입맞추고, 더운 숨을 내는 콧끝을 서로 부볐다.

그들의 관계는 다시 만나고 나서부터는 항상 그랬다. 누가 말하지도 않았는데도 동시에 손을 뻗었고, 입을 맞췄고, 몸을 섞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서로를 친구라고 칭하길 원했다.

"—잘 잤어?"

아침이라 잠긴 목소리가 예섬을 깨웠다. 응, 하는 단답과 함께 몸을 일으킨 그녀는 아직 누운채로 눈만 뜬 미로쿠를 향해 웃어보였다. 얇은 허리를 다 가린 녹색 머리카락이 가벼이 흔들렸다.

그들은 바로 전날 함께 밤을 보낸것에 개의치 않아했다. 너무나 당연하게 몸을 씻고, 아침을 함께 먹는 동안, 그들 사이에 오간 말은 연인보단 오랜 친구의 그것과 같았다. 그들은 그런 관계를 친구라고 불렀다.



친구이상 연인미만관계로 둘이 꽁냥거렸으면 좋겠다.
겁나 남들이 보면 친군가? 싶은데 둘은 친구라고 못박는 사이ㅠㅠㅠㅠㅠㅠㅠ
그래놓고 끈적한짓은 다하겠지ㅠㅠㅠ
아니라고 하니까 애인아니라고 믿는데 하는짓이 야해서 차라리 사귀던가, 하는 둘이 좋다ㅠㅠㅠ

미로예섬 덕질 블랙★베히모스

★현대 AU

3

미로쿠는 귀찮게 달라붙는 남자 동기녀석들에게서 도망치듯 달렸다. 끈질겨도 여간 끈질긴게 아니다. 결국 다시 잡힌 미로쿠가 그를 발견하고 웃으며 다가오는 원흉에게서 눈을 돌렸다.


대학교 2학년. 한창 소개팅이다 미팅이다 시끄러울 봄에 이팔청춘들이 모였으니 소란스러운건 약속이 되어있었다. 이번에 복학한 그로써는 내키지마는 않은 시기기도 했다. 같은 학년 동생들은 물론이거니와 그와 비슷하게 군대를 가 같은 학년인 동기, 아직 가지 않아 높은 학년의 동갑, 복학후 4학년이 된 스물 중후반의 선배까지 전부 만날때마다 좀 소개시켜줘라, 닳냐, 하며 달려들었으니.

이미 어지간한 여자들은 거의 다 그에 맞는 사람들이 채가고, 유독 눈에 띠는, 미로쿠가 속한 무리의 여자들은 끼리끼리 사귀어 아직 딱히 애인은 없는듯한 한명만 남아있었다. 호텔조리학과 예섬. 미로쿠와는 세살때부터 알고 지낸 이십년지기 친구기도 했다.

몸매 발군, 외모 출중. 게다가 성격도 호탕하니 좋아 여자친구로 삼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나 걸리는 점이라고는 거의 딱 붙어다니는 미로쿠 자신이었지만 예섬의 사귀지 않는다는 말에 다시 버닝중인 중생들.

"뭐야. 왜그러고 있어? 미로쿠."

사내놈 허리를 잡은 수개의 손은 뵈지도 않는지 웃음섞인 핀잔을 준 예섬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뺨을 긁었다.

"음…. 놀고 있었어? 내가 방해했나?"
"아니. 노는거 아냐. 벌써 애들 모였어?"

응. 다들 클럽이래. 흘러나온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말하는 모습에 남자들의 눈길이 모였다. 손들을 떨쳐낸 미로쿠가 고개를 휙휙, 저었다.

"너무 늦으면 톡할게. 카페에 있어."
"기다릴테니까, 느긋하게 와."
"어. 조금 이따가 보자."

가볍고 고개를 숙여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가버리는 뒷모습을 빤히 지켜보던 미로쿠의 친구들이 애절하기까지 한 얼굴로 다시 그에게 매달렸다. 아, 제발! 그런 그들의 모습에 정신이 멍해지기 까지 한 미로쿠는 헛웃음을 냈다.

뭐라는거야.

미로쿠는 웃는 낯으로 그들을 떼어낸 후,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고백한다고? 예섬한테?]
[쑥맥이 웬일로 대견한 생각을 다하네.]
[이벤트! 딱 이벤트각이다!]
[이제 솔로는 나뿐인건가….]

미리 말해둔 녀석들이 준비하고 있을터였다. 가벼운 가방안에서 혼자 덜겅거릴 반지 케이스를 상상하며 미로쿠는 실실 새어나오는 웃음을 막지 못했다.

*

대학생들 레드재규어 보고싶다아아아아아아 미니미니 의대생 보고싶다아아아아 컴공과 맥심에 미로쿠는 체육관련으로 아무데나 들어가라아아아아 링클이랑 윙첼은 신학과도 좋고 경영도 좋다아아아아아 델테미르야 너 어디가냐아아아아아아

미로쿠랑 예섬 썸탔으면..
미로쿠 예섬 겨론했으면....
미로쿠랑 예섬 겨론해애애애애애애애애애!

미로예섬 덕질2 블랙★베히모스

2

"팀 분류 봤어. 그들이랑 같은 팀이더라."

선명한 보라색 눈동자가 휘어져 곡선을 그렸다.
어. 그래.
진정으로 좋아하는 모습에 너와 헤어져 섭하단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자신의 팀에 꽤 만족한듯 웃으며 자신을 제한 다섯의 팀원에 대해 말하는 널 보다 꺼끌하게 수염이 자란 턱을 쓸어내렸다.

"—그러고 보니, 미로쿠. 수염길렀네? 아예 기르려고?"

의문을 담은 관심이 손길과 함께 다가왔다. 피끓는 청년에게 무방비할 정도로 붙어온 얼굴에 저도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온다. 정말, 내가 사내라는 자각이 있긴 한건지.
아냐. 그냥 한번 다듬어만 본거야.
어린 동생을 만지듯 부드러운 손가락이 코끝을 쿡, 찔렀다. 숨소리가 들릴듯 가까운 거리였다. 주변 사내놈들의 시선에 등이 다 따갑다.

"기르는 것도 좋을텐데. 잘만 다듬으면 자기 관리가 철저해 보이잖아."

그 말에 사내놈들 몇이 수염을 기르겠다 생각하는것이 다 보였다. 음흉하긴. 괜히 네 얼굴의 반을 가린 앞머리를 심술궂게 당겼다. 킥킥 웃는것이 여간 즐거워보이는게 아니었다.
귀찮잖아. 너가 다듬어주려고?
내 말에 넌 잠시 손길을 멈췄다.

"글쎄. 나는 그런건 잘 못해서."

어색하게 웃는 네가 서둘러 몸을 돌렸다.

너는 이상했다.

진심을 조금이라도 내비치면, 거짓말처럼 농담으로 흘렸다.
지금처럼 일부러 끌어들이려 하면 몸을 뒤로 뺐다.

마치, 이 이상은 안된다는듯이.

*

으아아아아아아 끼부리는 미로예섬 줘요
얘네들은 서로 간만 봐도 좋다고오오오오오오오
그냥 겨론해줘
미로예섬 겨론했으면.

미로예섬 덕질 1 블랙★베히모스

1

[——, 뭘 하고 있어?]

아. 또 그 여자다.

미로쿠는 뒷통수를 때리는 햇살로 그늘져버린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시금 생각했다. 선명하지 않다. 분명 보고 있는데도, 상이 맺히지 않는 얼굴. 하지만 너무도 익숙한 온기에 손을 뻗어 여인의 머리카락을 쥐었다. 녹빛, 가볍게 굽슬거리는 결좋은 긴 머리카락.

[어리광이야? 그만 일어나.]

웃는것이 분명하게 흔들리는 목소리와 함께 얇은 손끝이 그의 손등에 닿았다.

"알았어, 알았다고."

그 약한 재촉에 못이기듯 일어난 미로쿠가 가까워진 여인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킥킥 웃으며 그와 똑같이 이마위에 키스한 여인은 허리를 들고 양손을 뻗어 그를 기다렸다. 얼굴도 모르고 목소리마저 잊는데도, 어여쁘구나. 일어나 여인의 허리를 잡아챈 미로쿠는 단정한 머리카락에 볼을 부볐다.

콧 속으로 강하게 들어오는 체취는 사탕처럼 달았다. 자두향같기고 했고 오렌지향같기도 한 체취에 코끝이 다 얼얼했다. 안고있으면 만족감에 웃음이 나와, 멍청해지기도 한다.

왜 너는 꿈인지.

*

기억 잃었을때 미로쿠가 예섬 꿈꿨으면.
되새기면 하나도 기억안나는데 계속해서 아른거리니까 보고싶다고 찌질거렸으면 진짜 좋겠다.
미로쿠랑 예섬 겨론해줘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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